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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복음방송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4편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5-02-13 (금) 03:44 조회 : 2676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Family Saver Center에 이성희 clinical socialworker 입니다.  전  지난 몇주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라는 주제로 청취자 여러분과 나누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타락의 원리중 통제 성향으로 인해 우리안에 일어나는 “비판적인 마음”을 주제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죄의 결과를 직접 식별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유일한 심판자주이신 하나님의 역활이지요.  다시말해,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자가 되려는 시도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타락의 모양인 비판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입각해 우리 자신과 서로를 평가하고, 시험하고, 측량함으로써 항상 더 낫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신자로서 서로를 판단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도 서로의 죄를 지적하고 허물을 바로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요.
먼저 비판과 바울이 말씀한 평가의 차이점을 정리해 봄으로써 비판하지 말하는 가르침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청취자 여러분과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순간 세가지 일을 행하는 셈이됩니다. 첫째, 자신을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두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양 행동합니다.  둘째, 상대방을 단죄합니다. You are wrong!. 셋째, 상대방이 지켜야할 기준을 내가 설정합니다.
반면, 누군가를 평가할 경우, 이 세가지 일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첫째, 자신을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똑같은 죄인이자 함께 고난받는 자로서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고, 자신도 얼마든지 그유혹에 굴복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며 상대를대합니다.  둘째, 상대방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율법의 분노로 그사람을 정죄함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의 구렁텅이로 상대를 몰아 부치지 않습니다.  죄인으로서 똑같은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특권은내게 존재하지 않는 다는 자세에 입각해 상대에게 다가갑니다. 셋째, 기준을 내가 설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겸손히 복종하며 서로에게 회개를 권유합니다.  따라서 평가의 세가지 요소는 겸손, 용서, 교정입니다.  이들 요소는 하나님의 역활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활을 대신하려고 할때는 비판으로 인해 삶을 누리고 경험하는 능력이 크게 제약을 받게 됩니다.  비판을 하는 자신이나 비판을 받는 상대 모두 수치심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우리의 참 모습에 충실할 수 없고, 자신의연약함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참 모습을 부인하고 무화가 나무잎으로 은폐하려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결국, 비판을 앞세우는 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경험 할 수 없습니다.  서로를 비판하면 상대방을 더 알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집니다. 
지난 몇주간 나누었던 리치와 티파니 목사님 부부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처음 관계를 맺을 때만해도 서로에게 솔직하게 열려 있었습니다. 서로를 기꺼이 인정함으로써 깊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실패와 상처들을 공유했습니다.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은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다 마치 하나님 처럼 서로를 비판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온전히 경험할 수 없습니다.  리치는 자신의 행위를 비판하는 아내의 태도 때문에 그녀에게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판을 피하려는 태도가 계속 반복되면서 리치는 더욱 궁지에 몰렸고,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리치가 삶의 큰 측면에만 신경을 쓰면서 아내 티파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세한 일들을 잊어버리자, 그녀는 마치 하나님처럼 격한 진노를 그에게 쏟아 냈습니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비판의 세가지 일을 행했습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리치보다 자신이 월등하다고 생각하며 그를 경시했고, 그를 정죄함으로써 진노와 수치심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며, 성경에도 없는 기준을 자신이 설정했습니다. 곧 그녀의 기대가 남편 리치를 비판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식으로 행동하자 남편 리치의 진정한 모습을 경험하는 삶이 갈수록 축소 되었습니다. 티파니는 남편의 잘못만을 보았을 뿐, 그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의 결점만을 보았을 뿐 그의 두려움, 연약함, 열정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비판할수록 남편은 더욱더 무화가 나무 잎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아내와 공유하는 능력을 서서히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더 이상 그녀에 대한 필요성과 사랑은 물론, 아내의 비판과 단죄를 피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그것을 그녀와 함께 나눌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자, 그러면 아내 티파니만 “비판의 원조”였을까요.  남편 리치에게도 같은 일이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격노하는 아내를 비판하며, 정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남편을 사랑할 줄 모르며, 긍휼과 용서를 실천할 줄 모르는 동역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여자라고 단죄했습니다. 그리곤 자신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대에 못미치는 아내로 바라보았습니다. “내 아내는 불손하며 두려워서  거리감을 두고 싶은 여자다,그러니 남편인 나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라고 비판했습니다.  리치가 성적 충독을 느낀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무의식중에 그는 티파니를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라 잔소리꾼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준으로 아내를 심판하고 정죄하면서 다른 곳에서 관계를 맺고 성적 만족을 얻는 행위를 정당화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에 티파니가 몹시 나쁜 아내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행위를 저지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점차 아내에게서 멀어져갔고, 그 결과 그녀를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리치의 타고난 성향이 아내 티파니 처럼 격노의 표현을 하게하진 않았지만, 그의 맘속에는 이미 격노로 들끊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리치는 성적 범죄를 비롯한 다른 죄들 때문에 스스로를비판하느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경험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 갔습니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이 너무 심해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하거나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너무나도 나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탓에 그런 행동을 부추기는 원인이무엇인지조차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역활을 대신하려는 태도는 이들 부부의 관계는 물론 그들 자신을 파괴했습니다. 비판을 중단할 때 비소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이점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느날, 상담중에 티파니는 리치를 통제하려 들고 리치는 그녀의 그런 태도에 맛서려 했습니다. 그순간 상담가는 끼어 들어 리치에게 말했다.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너무 비판하는 듯한 말투군요.”남편 리치는 “무슨 뜻입니까.  저는 단지 아내의 공격에 대항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평한 처사지요.  제게 숨지 말고 이렇게 말 하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나요.”상담가는“공평한 처사일 수는 있지만 마치 법정에서 판사가 누군가를 감옥에 보낼때의 공평한 판결을 보는 듯하군요. 조언하건대, 아내가 동제하려고 들더라도 그녀를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아내가 그런 태도를 보일 때는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것 처럼 그녀를 단죄하지 마세요.  그녀의 마음을 드려다 보세요”
리치는 아내가 사랑스럽지 않게 반응하는 것을 두려움과 연약함을 호소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강함 힘을 가지고 통제를 일삼았지만, 실제로는 아내기 연약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녀에게 점차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곳 아내의 흐느끼는 어깨를 만지며 위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치또한 숨지않고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아내에게 솔직하게 열어 놓으려 노력했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인양 그자리에서 서로를 비판하며 통제하려는 태도를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 “자신의 자제력”을 향상 시킵니다.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떠올려 보시겠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나와 남편의 관계는,나와 자녀의 관계는, 나와 목사님과의 관계는 어떻지.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감으로 멀어져 가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혹시 내가 하나님인양 더 높은 자리에서 상대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내 기준으로 강요하고 있지는 아는지, 그렇게 상대를 통제하려 들면서, 나 스스로의 자제력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비판의 원리가 관계가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린 서로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때론,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때도 있습니다.  3월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주제로 구제적인 삶에 실천방식들과 함께하는 성경 공부에 참석을 원하시거나 전문 상담을 원하시분들은 FSC 714-484-0033으로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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