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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자"

글쓴이 : FSC 날짜 : 2010-01-22 (금) 14:31 조회 : 2742
이성희 Clinical Social Worker
 
자아세우기! 이 제목을 처음 들을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떤분들은 심리학적으로 내적인 측면들을 다루는 전문적인 교육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반면 기독교인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는데… “자아를 세우라니..” 하며,  잠깐 “개인주의”의 의미와 혼동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들은 앞으로 하나 하나 정리하기로 하구요. 전 오늘 청취자 여러분과 빌립보서의 2장 말씀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븜을 충만케 하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말씀을 적용해 보고자 노력한 경험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마음 깊은곳에는 상대방의 문제점들..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 자신보다 못한 능력 또는 교육수준 등.. 나의 잣대로 이미 분명히 나보다 못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 내가 저주지…하나님께서 남을 더 낫게 여기라 하셨으니..” 아마 이런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애쓰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그럼 진정으로 우리가 남을 나보다 나으게 여길 수 있을까요..  감히, 얘라고 답변하며,  이 말씀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거기에서 오는 자유로움와 기쁨을 누리는 청취자 여러분과 제가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선 이말씀을 “자기”라는 주어로, 주체로 시작합니다. 다시말해 자신을 낫게, 자신을 괜찮게 여길줄 하는 사람이 먼저 입니다. 자신을 소중이 생각하는 사람, 자신을 잘 용서하고, 주어진 그래도의 능력대로 받아드리는 사람.... 부풀리지 않고 자신이 잘해낸 만큼만 스스로를 칭찬해 줄줄 하는 사람..이런 사람은  ‘남/타인’을 행해 눈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튼튼한 자아를 자진 사람은, 자신이 어느만큼 가졌건 그 크기와 관계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이 가진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받아드리는 사람입니다.  부족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나, 아직 죄성이 남았지만 그래로 하나님앞에 거룩할려고 노력하는 나.. 모든것을 잘하지는 않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독특함이 있는나… 이런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남에게도 똑같은 “받아 드림”이 있습니다. 

반대로, 자아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에 쉽게 자괴감에 빠집니다.  몰래 반복해서 짓는 나의 죄성에, 미성숙한 인격에 항상 자책합니다. 자신의 학벌에 수치심을 느낍니다.  이렇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이런 분들은 항상 자신에게  채워지지 않은 부분에 집중하게 되어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반응은 다를 수 있습나다. 부풀린 우월감에 잘난척을 할 수도 있구요. 속과는 달리, 항상 다른 사람에게 비위 마추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안’이 시끄럽기는 마찬자기 입니다.  이런 시끄러운 속으로 남/타인이 잘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좋은 능력을, 많은 돈을 이미 같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의 잦대는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기’ 또는 ‘자아’라는 개념을 두가지 극단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자아가 강하다. 라는 개념으로 ‘이기심, 자기 중심적, 자기 과대평가’ 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속성들과 결부됩니다.  반면, 자아가 약하다 라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지나치게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의존적이라느니, 눈치만 보는 사람 등으로 낙인합니다. 

하지만, 자아의 바른 개념은 아주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나를 존중하는 능력입니다. 남을 존중할 줄하는 힘을 주는 근본 요소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개념의 자아를 가진 사람들을 먼저 자기안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온전하게 느낍니다. 슬플때 슬퍼진 이유에 대해 인식하고, 슬픔을 느끼고 극복합니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자극적인 다른 기쁨으로 점프시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느낌들을 존중하는 사람은 그만큼 타인의 삶에 정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자질이 있습니다.  진리와 환상을 분리하되 여전히 꿈을 간직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스스로 갉아먹는 자기의심 없이, 계속적으로 일관성있게 성취를 추구하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이있습니다.

자, 이것은 자아가 튼튼할때 결론으로 다가오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아마 빨리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주 부터는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자아를 갖고 사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놓고 우릴 스스로를 정검하는 시간을 작기 원합니다. 6가지 주제로 설명되어질 “가짜 자아”는 그뒤어 숨어있는 시기심, 수치심, 그리고 경쟁심등으로 비추어져 설명랄 수 잇습니다.

예를들면, 자아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경쟁은 ‘우월함’을 재확인하는 길입니다. 우월한 태도는 이런 사람들의 불완전함이 들통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벽 구실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눈에 불을 커고 자녀의 잘잘못을 들추어 수치심을 자극하는 부모가 되기 쉽습니다. 또한 이렇게 자주 말합니다. “사실 그 사람, 별것도 아니야” 이런 경멸뒤에는 감추어진 시기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결점을 세세하게 까발리는 말들을 좋아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인가 비어진 (empty)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닙니다. 내척치유, 마음수련, 드레스디아서, 상담… 하지만, 한순간의 울음과 웃음으로 지나쳐 버린 “자아”는 아직도 내속에 연약하게 남아있니다.  이렇게  숨죽인 가짜 자아는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그대로의 나의 진실을 찾아, 내 자아를 튼튼하게 할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상황과에서도 상황과 관계없인 스스로 자유할 수 있는 힘이 자신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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